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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호흡하는 시간

다시 호흡하는 시간

 

 

집, 예술을 품다. - ‘집’이라는 공간의 전이轉移

누군가는 세상의 첫걸음을 시작하고 또 누군가는 세상과 이별하기도 하고, 한 가족의 삶이 시작되기도 분리되기도 하는 삶의 가장 내밀한 공간인 집. 집은 긍정의 기억이든 부정의 기억이든 모두에게 존재된 공간이다. 단순하게 물리적 공간일수도 있고, 기억에 내재된 추상적 공간일수도 있는 집. 집에서 벌어지는 일상은 모두에게 특별하게도 평범하게도 존재한다. 집의 공간에서 삶이 겪어내는 일련의 사건들은 개개인에겐 특별한 것 같지만, 멀찍이 물러나 바라본 사건들은 모두에게 벌어지는 그저 삶의 순환적 행태들인 것이다. 예술도 집과 같지 않을까. 아무리 심오하고 난해한 예술이라 할지라도 그 근원에는 우리 삶의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혹은 특별한 사건들에서 비롯된 것이 담겨 있다.

집과 닮은 예술, 예술은 집을 품고, 집은 예술을 품는다. 삶의 공간이었던 집은 예술의 공간으로 전이轉移 되어 삶을 닮은 예술을 품는다.

 

 

집이 담은 시간과 공간 - 집의 내적 외적 사유를 담은 작품들.

이번 전시는 주거의 공간이었던 집을 예술의 공간으로 바꿔가면서, 집이 내포하고 있는 내적 외적 사유를 담은 작품들을 떠올리며 기획되었다. 집이라는 개념이 가진 공간적, 사유적 의미 외에도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장동)의 지역적 개념도 더해졌다.

집이 탈바꿈되는 과정에서 상량대에 새겨진 1967년이란 흐릿한 숫자가 들춰졌다. 천정에 가려 보이지도 않을 것에 정성스레 새겨나간 글자는 현재의 삶을 반추하는 듯 했다. 보이지도 않을 것에 들여진 정성은, 오랜 것을 쉽게 허물고 빠르게 고쳐내는 것에 더 익숙해짐을 무색케 했다. 1967년 처음으로 누군가의 호흡을 담아내며 흘러갔을 50년이라는 시간. 그 시간 안에는 급변하는 현대의 사회도, 광주의 변화도 담겨있다. 한때는 광주의 중심가였지만 현재는 원도심이라 불리는 동구의 한옥집들. 골목골목의 옆가지를 채운 기와지붕들과 새로이 지어지던 양옥집들. 우리 삶의 시선에선 사라졌지만 캔버스에, 카메라에 붙들린 기억은 집과 동네가 가진 시간들을 되돌렸다. 이제는 사라진 철길 건널목, 철길 앞의 작은 집, 주택가 골목 모퉁이에 자리한 작은 구멍가게, 기와지붕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둘러싸인 작은 동네. 2001년 겨울의 어느 날 푸르스름한 새벽녘의 따스함을 담은 정선휘의 그림과, 1992년 채 손에 익지 않은 카메라를 들고 피사체를 찾아 다녔을 박일구의 사진에는 사라져버린 풍경과 못내 아스라한 기억이 공존한다.

조현택은 직접 사라질 집들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인간의 욕망이 일궈낸 매끈한 도시풍경의 이면에 폐허로 남은 풍경은 주인 없이 비어있는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안과 밖이 공존하는 풍경은 집이 가진 시간과 공간, 그 속에서 공존했을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라는듯하다.

집을 기억함은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기억함과도 같지 않을까. 집에서 모든 이들의 삶이 시작되고 그 삶에서 만들어내는 무수한 이야기들은 소중한 일상이 된다. 임현채는 작가로 엄마로 살아가며 그 일상을 그려냈다.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의 장난감들, 방바닥의 머리카락을 모아낸 테이프 한 땀, 돌아서면 수북하게 쌓이는 빨랫감들. 하잘 것 없는 일상을 집이 품어내고 예술이 품어냈다. 조병철은 마당에 꽃이 만발한 봄날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는 집의 일상을 그렸다. 만개한 봄꽃을 보며 반갑게 대문을 들어서는 따스한 일상. 뭔지 모를 그리움을 갈망하게 하는 마음속 집의 풍경이 아닐까.

집이 담은 일상의 외적 풍경은 아니지만, 집이라는 내면(혹은 개념)에도 무수히 많은 풍경이 존재한다. 조윤성의 <씨앗으로부터> 작품은 2010년 작품으로, 작가의 현재 작품 <해피 에너지> 연작들을 파생케 한 작품이다. 씨앗은 마치 삶의 여러 가지를 뻗어내는 ‘집’과 같이 작가에게 근원적으로 존재하며 묵묵히 새로운 작품의 싹을 끊임없이 틔워내고 있다.

공성훈의 먼지그림은 그럴싸한 그림인 듯 아닌 듯 묘한 그림이다. 멀리서 봤을 때 꽤 그럴싸한 풍경 같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결국 눈앞엔 작은 알갱이들에 개어진 물감덩어리들만 보이게 된다. 1996년에 그려진 먼지그림은 실제 작가가 거주하던 집의 먼지들을 모아 그려낸 작품이다. 어찌 보면 세상에 가장 영원한 것은 먼지가 아니겠냐고 말하는 작가의 먼지 그림은, 삶의 방식이 아무리 변해가도 사라지지 않을 ‘집’이라는 존재(공간적 존재)와 꽤 닮아 있다.

집은 누군가에겐 그저 외적 구조물일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기억에 존재하는 내적 공간일 수도 있다. 집의 사전적 의미인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라는 문장으로 대변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것들을 집은 담고 있다. 정승운은 ‘집’ ‘숲’ ‘꿈’이라는 문자로 집의 내적 외적 의미를 모두 끌어안았다. 집이라는 시간과 공간이 가진 삶의 무한한 이야기들은 간결한 한글자의 단어들로 일축된다. 그래서 더 강력하고 깊은 ‘집’의 끝없는 잔상을 만들어낸다.

 

다시 호흡하는 집

50년 된 집의 시간을 들추고 삶의 흔적들을 다듬어 예술공간이 된 집의 첫 전시 <다시 호흡하는 시간>에서는 오래된 집처럼 조금은 지난 시간의 작품들을 들춰냈다. 불과 20여 년 정도의 시간이지만 우리시대의 미술환경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시간을 거스르는 듯 작품들엔 지난 시간의 그대로 남아있다. 비단 사라진 풍경만이 아닌 작가의 젊은 시절의 순수와 패기도 그대로 남아 현재의 작품과 함께 버무려진다. 그래서인지 오랜 시간을 품은 집과 오랜 시간을 지나온 작품들, 그리고 끊임없이 현재를 살아가는 집은 서로 꽤 닮아 있다. 은근하고도 깊게 집의 기억을 담은 작품들이 ‘예술공간 집’을 채우고, ‘예술공간 집’이 품어낸 예술의 호흡이 이곳을 오가는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온기로 전해지길 기원한다.

 

2017년의 겨울을 맞이하며

<예술공간 집> 문희영

공성훈, 박일구, 임현채, 정선휘, 정승운, 조병철, 조윤성, 조현택
2017.11.30 ~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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