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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리다

그리고 그리다

 

 

집이 담은 두 번째 전시, 지난 시간과 현재 시간의 조우(遭遇)

<예술공간 집>의 두 번째 전시는 송필용, 김성결 두 작가의 ‘그림’이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며 묵묵히 시대를 그려가는 이들의 그림에 담긴 풍경은 다른 듯하면서도 공통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로 그림으로 보여주는 시대의 풍경이다. 이번 전시는 송필용 작가의 과거 초기작품과 김성결 작가의 현재 작품으로 지난 시간과 현재 시간이 그림으로 조우하는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1980년대 후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에 매진해온 송필용 작가의 초기작품엔 당시 시대를 담은 그림들이 주를 이룬다. 80년대라는 대한민국의 시간은 역사적 사건들 아래서 개인이 자유로울 수 없는 시간이었다. 동시대의 사건과 아픔을 함께한 자로서 묵과할 수 없는 현실을 송필용은 그림으로 기록했다. 민중의 슬픔과 분노, 아픔, 희망 등을 서사적으로 그려낸 165M에 달하는 작품 ‘땅의 역사’와 같은 작품들로 시대를 묵직하게 그려냈다. 반면 30여 년의 차이로 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김성결은 현대인의 초상으로 시대를 기록한다.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고 수많은 타인의 모습일 수도 있는 인물들은 작품 가득 끊임없이 그려져 간다. 이들이 그려가는 대상은 조금 다르지만 자신들이 직면한 현실을 작품으로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그리기’라는 틀 안에서 말이다.

 

 

호모 그라피쿠스Homo Graphicus, 그림 그리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부터 시작하여 인류(혹은 인간)을 말해주는 수많은 명칭들 중 그림 그리는 인간이라 명명된 호모 그라피쿠스, 인류가 지속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림 그리는 인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어느 학자의 말처럼 그림 그리는 인간은 인류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시시대에 벽화는 언어도 문자도 없던 이들에게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전수해주었고, 현재까지도 그들의 삶을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다. 그리 보면 그림은 누군가 특별한 이들만이 그리고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특별한 도구가 아닐까. 송필용과 김성결 두 작가는 특별한 도구인 그림으로 현시대를 끊임없이 이야기해나간다.

 

 

땅과 사람, 삶을 채우는 존재

시커먼 흑색과 백색, 언뜻언뜻 보이는 여러 색채들로 두텁고 찐득하게 그려낸 거대한 산과 붉은 황톳빛 땅, 붉은 땅의 전면에 시커멓게 그을린 할머니의 얼굴, 투박하고 질펀한 땅을 가로지르는 푸른 물줄기. 80~90년대 땅은 시대를 대변하는 거대한 상징이었다. 삶의 본질을 찾고 그 감동의 울림과 정감을 담아내고자 한 송필용은 그렇게 담담하고도 굵고 힘차게 시대를 그려냈다. 전쟁의 아픔을 품은 백아산, 영암의 뻘건 황토땅은 마치 이글거리는 민중의 삶을 대신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땅을 가로지르는 푸른 물줄기는 시대의 아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열망하는 생명의 상징처럼 보여진다. 굴곡진 역사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땅과 물줄기, 그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송필용의 그림 안으로 들어왔다. 기름 냄새 질박하게 풍기는 그림들엔 그 시대의 냄새 또한 짙게 베어들어 있다.

거시적으로 시대를 표현했던 송필용의 초기 그림과 대조적으로 김성결의 그림에서는 자신으로부터 출발한 미시적 시대가 먼저 인식된다. 김성결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그린다. 대학시절 자화상으로부터 시작된 인물 그리기는 이제 현대인(익명의 모든 사람)의 모습으로 귀결된다. 김성결은 개별적 삶을 살아가는 개인 개인과 사회 속에서 맺어지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 주목했다. 나일 수도 타인일 수도 있는 수많은 인물들은 김성결의 그림을 가득 메운다. 사람과 사람들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허식, 또는 껍데기같은 모습은 작가 스스로를 좌절케도, 허무하게도 했다. 이는 비단 작가 개인이 느끼는 것만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김성결은 그림을 그려가며 그 허식의 관계들이 보여주는 부정의 모습을 넘어서 긍정을 바라는 마음까지 생각한다. 지워진 얼굴, 일그러진 얼굴, 형태를 알 수 없는 얼굴들 가득하지만, 우리 삶은 이제 전부가 아니라고 더 나은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듯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며 이야기하고 그려나간다.

 

 

세대를 넘어, 시대를 넘어 같은 궤도에 머무는 ‘그리기’

이번 전시에서는 한 세대를 가늠하는 30여년의 시간차를 가진 두 작가의 그림이 함께 보여진다. 마치 아버지와 아들처럼 두 작가가 살아온 시대는 극명하게 다른 모습이다. 1980~90년대 송필용은 작가로서 시대의 과업과 민중의 삶을 묵직하고 힘있게 그려내고자 했다. 김성결 작가는 2000년 후반에 대학에 입학했다. 이십대 젊은이로 살아가며 88만원 세대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동시대의 버거운 청춘의 삶을 감내해나가는 수많은 이들의 모습에 주목하며 하나하나 인물들을 그려갔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려지는(혹은 그려내는) 대상은 다르지만 결국 본질은 그림으로 시대와 삶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미디어나 영상, 설치, 매체 등 현대미술의 다양한 표현방식들을 뒤로 하고 이들은 끊임없이 그림을 그린다. 기계나 도구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눈과 마음, 머리와 손이 하나 되어 그리고 또 그린다. 손끝을 지나 붓 끝엔 마음이 스며들고 감정이 들어가고 감성이 베어난다. 질척거리고 꿈틀거리는 색덩어리들에 마음이 울컥하기도 하고, 슥슥 지나간 붓자국과 연필자국에 맘이 휑해지기도 한다. 바로 ‘그리기’라는 것 때문이다. 결국 사람의 손으로 사람의 마음을 담아 그려내는 ‘그리기’라는 것은 가장 원초적으로 삶과 예술을 보여준다. ‘그림’이라는 궤도 안에서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 과거의 시대와 현재의 시대가 끊임없이 조우하는 것이다. 두 작가의 그림도 서로 다른 시간에서 그려졌지만, 결국 그림이라는 궤도 안에 공존하며 우리네 삶에 대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송필용과 김성결 두 작가의 작품을 마주하며 그림이 사회 안에서 어떤 존재로 자리하는지, 작가들은 어떻게 그림으로 시대를 이야기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기’라는 미술의 가장 기본적 방식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가지는지, 이 특별한 그리기의 세계와 그림의 매력에 한없이 빠져드는 시간이 되길 기원해본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기꺼이 출품해주신 송필용 작가님과 김성결 작가님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린다.

 

2018. 2. <예술공간 집> 문희영

송필용, 김성결
2018.2.5 ~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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