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언어
백미리내, 장승호
2018.04.13 - 2018.05.31
이번 전시는 30대의 젊은 두 작가가 만들어내는 추상미술의 세계이다.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백미리내 작가와 서양화를 전공한 장승호 작가. 두 작가는 지역 화단에서 드물게 추상미술을 고집하는 청년작가이다.
백미리내 작가의 추상미술의 출발점은 신앙에서였다.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에게 궁금했던 존재론적 고민은 작품의 모태가 되었다. 나는 누구인지, 또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림으로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여러 가지의 철학적 질문들은 그림 안으로 들어갔다. 인간에게 주어진 순환적 삶의 행태와 자연만물의 생성, 소멸은 특정한 형상으로는 대체될 수 없었다. 추상이라는 세계 안에서 작가의 고민과 무수한 생각들은 자연스레 그림으로 스며들었다. 땅 위의 가장 작은 존재인 모래는 작가의 붓이 되어 검은 먹빛을 품고 하얀 종이 위를 누볐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사고(思考)는 몸을 타고 손끝에서 각자의 흔적들을 쏟아냈다. <순환-울림>, <순환-하늘> 등으로 명명된 작품들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세상 만물의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때론 고요하게 때론 묵직하게, 또 때론 강한 울림으로 그림 언어를 만들어냈다.
장승호 작가는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신예작가이다. 작가는 ‘왜 추상인가’보다는 ‘왜 그림을 그리느냐’에 더 크게 마음을 두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게 꼭 무엇을 표현해야한다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보는 모든 것들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생각을 담았다. 수없이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작가는 자유로움과 살아있음을 맛봤다. <see 00>시리즈로 명명되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언뜻 보이는 형상을 제외하고는 거의 색채와 붓의 움직임만이 화면을 꽉 채운다. 마치 방금 눈앞에서 그림을 그린 듯 생생한 색채와, 생동감 있는 붓의 흔적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안에 숨겨진 수많은 그림언어와 상상되는 이미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를 맴돈다.
두 작가의 그림에서는 무언가를 그려가는 것과 함께 그려감의 태도, 그려감의 과정, 그리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표출되는 무수한 그림 언어가 함께 내재되어 있다. 문자와 언어로는 설명 불가한 모든 것들이 그림 언어 안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