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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damental

fundamental, 다시 근원으로.

 

 

‘예술’은 어디까지 세상을 담을 수 있을까. 말이나 글, 그 모든 언어로도 가히 전부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 미묘하고도 절대적인 그 ‘무언가’를 그림은 담아내고 품어내어 사람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규정할 수 있는 단어가 없기에 ‘무언가’라고 칭할 수밖에 없는 것. 인류의 시작과 함께 해 온 예술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말로 내뱉을 수 없고, 글로 기술해나갈 수 없는 불명확하고도 본질적인 그 모든 것들을 예술은 담아낼 수 있었다. 천 개의 야누스를 품은 듯 무한한 속내를 품은 예술, 그 가운데 가장 근원적 형식이랄 수 있는 ‘회화’는 더욱 섬세하게 인간의 감정을 쓰다듬고 그 틈새를 거닐며 더 많은 감각과 감정들을 움켜쥐고 있다.

우리가 보는 실재, 또 보이지 않는 실재. 볼 수 있는(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지만 시지각의 감각으로 체화된 모든 것들은 ‘예술’이란 함축된 단어로 명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회화(그림)’이라 명명된 것은 과연 어디까지 세상을 담을 수 있을까. 그 무한함의 끝은 과연 존재할까.

 

 

fndamental, 그림 형체를 이뤄가는 영역에 관한 이야기

김유섭은 ‘회화’라는 형식으로 예술 안에 존재하는 본질에 대한 고민과 끝없는 실험을 지속해왔다. 그의 예술에 대한 집요한 철학적 성찰은 <검은 그림>, <‘Energy Fiele>, <Piece of Paradise> 들로 줄곧 증명되었다. 수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예술세계의 끝없는 확장 앞에서 더 깊이 본질을 모색해가는 물음은 새로운 시리즈 <fundamental(근본(본질)적인, 핵심적인)>로 함축되어 그 해답을 더 명확하게 증명해나간다. 작가는 “fundamental은 마치 ’검은 그림‘ 뒤에 매달린 ‘디옥시리보스(deoxyribose)처럼 그림 형체를 이뤄가는 영역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림’이라는 형체, 모호하고도 끝을 알 수 없는 형체가 만들어내는 영역, 그 안을 채우는 다채로운 이야기는 ‘날것’같은 생생함으로 새로운 시리즈 'fundamental'이 시작됨을 알린다.

 

 

‘날것’으로부터 생성된 에너지

'fundamental'로 명명된 이번 전시의 그림들은 작가의 작업실 안 생생하게 ‘날것’으로 존재라는 ‘사고’로부터 촉발된 것이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들은 무수한 실험을 거쳐 가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형성해냈다. 작가 스스로 실험실이라 칭하는 작업실, 그야말로 ‘날것’들의 집합이 쏟아낸 흔적들은 생생한 기운을 품고 있다. 작가에게 비춰진 사회의 단편적 풍경, 진실이 정의되지 않는 사회의 불안함, 자연의 무한한 신비로움, 시지각을 넘어선 초월적 감정, ‘예술’이란 렌즈 너머 바라다 보이는 우주는 거침없이 화면을 채운다. 실험실(작업실)안 작가의 심연에 나뒹구는 모든 에너지들은 요동치면서도 고요하고 묵직한 기운을 가득 안고 있다. 구상 혹은 추상이라 명명할 수 없는 근원적 형상으로서의 표상들과, 한 작가의 몸과 마음에서 비롯된 흔적, 이를 표현하는 도구가 된 종이와 검은 안료는 서로 얽히고설킴을 반복하며 예술이란 의미의 원초적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구체적 대상이 아닌 사유의 대상을 바라보는 방법, ‘회화’란 것이 품을 수 있는 무한한 세계,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을 넘어 더 깊은 것들을 볼 수 있는 힘을 서서히 끌어당겨 내민다. 작가의 ‘회화’라는 본질적 고민이 낳은 원초적 물음, ‘fundamental’은 ‘날것’으로부터 생성된 에너지가 뿜어내는 예술의 살아있음을 확고히 증명한다.

 

 

‘회화’라는 궤도의 확장

무언가를 형상화한다는 것, 다양한 색과 이미지로 종결되는 회화는 줄곧 시대를 반영하고 인간의 마음을 투영해내는 그 ‘무언가’였다. 그 안에는 ‘표현’보다는 ‘기능’의 의미가 더 강하게 내포되어 있지만, 김유섭은 기능보다는 ‘표현’에 더 깊이 몰입했다. 회화가 가진 본래의 궤도는 존재하지만 그 궤도를 넓혀가며 ‘회화’라는 영역을 끝없이 확장해가고 있다. ‘검은 그림’과 ‘유색 그림’을 넘어 ‘fundamental’은 그 모든 것을 삼키고, 비어 있는 틈을 더 촘촘히 채워간다.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으며 해답을 더해가는 길, 회화가 가진 DNA를 모두 움켜쥐고 단순히 안료가 나뒹구는 화면이 아닌 사유가 침잠된 흔적의 제자리를 찾아가며 본질에 다가가는 그의 작품은 ‘회화의 종언’시대에 ‘회화라는 궤도’의 확장을 확언한다. 작업실 안 나뒹구는 ‘날것’들이 생성해낸 에너지, 그 에너지의 끝없는 확장을 함께 사유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2019.12.

예술공간집 문희영

김유섭
2019. 12. 7 ~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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