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마음이 지어가듯>

고차분
2022. 12.15 ~ 12.27

마음으로 지어간 집들의 이야기

마음이 지어가듯, 오늘을 이어가듯
세상의 첫걸음이 시작되고 가족의 삶이 시작되기도 분리되기도 하는 삶의 가장 내밀한 공간인 ‘집’. 개인의 기억에 내재한 추상적 공간이자, 현실의 삶을 지속시켜 주는 물리적 공간이기도 한 집은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공간이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삶이 겪어내는 일련의 사건들은 개인의 삶을 일궈내고 또 한 시대를 엮어낸다. 한 개인에게 특별한 순간들을 멀찍이 물러나 바라보면 모두에게 주어진 그저 평범한 삶의 순환적 행태들의 집합일는지 모른다. 이렇듯 평범한 일상을 가득 채우는 공간, ‘집’은 그렇게 그리 특별하지 않은 소소한 사건들이 반복되고 또 축적되는 삶의 근원적 장소이자 가장 평범하고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물리적 공간 혹은 사회적 정의 등을 모두 뒤로하고 ‘집’은 그 존재만으로도 삶의 무한한 서사를 오롯이 품어내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고차분 작가는 ‘집’의 외형으로 그 안에 담긴 서사를 하나씩 풀어낸다. 개인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들이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공유되는 이야기들을 담아간다. ‘짓다’라는 의미를 품은 ‘집’의 뜻처럼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집을 지어간다. 마치 하루를 옹골차게 살아가는 것처럼, 그림을 그리며 오늘과 오늘을 이어가며 화폭 위에 삶을 짓기를 반복한다.


작고도 큰 세계
작은 집의 형상들이 촘촘하게 화면을 가득 메웠다. 작품에 시선을 밀착하면 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집들은 제각기 다른 모양과 표정을 가지고 있다. 우리네 삶의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는 명쾌한 증명과도 같이 화면에 촘촘히 박힌 집들은 저마다의 얼굴을 보여준다. 또 다시 살짝 몇 걸음 물러나 바라본 작품은 더 큰 이야기를 지어낸다. 집의 형상 위로 중첩된 이미지는 작품의 큰 이야기를 구축해나간다. 어머니의 자궁 같기도, 요람의 모양 같은 둥그런 형상은 ‘안식’의 의미를 담은 작품이 되었고, 집들이 중첩되어 작은 산맥들이 굽이치는 형상은 ‘숲을 보듯이’라는 작품이 되었다. ‘겨울을 지나는 이들’, ‘봄소식’, ‘이상한 게 아니고 특별한 거야’ 등 작품들은 하나같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집’이라는 시공간의 의미를 쌓는다. 이처럼 작가는 집의 외형을 빌어 삶의 이야기를 전하며 결국 집은 인간임을 슬며시 전한다. 작은 집과 교차되는 이미지들은 절묘하게 버무려지며 작고도 큰 세계를 만들어간다. 화려한 듯하지만 절제된 색과 단순하고도 다양한 형상들은 ‘집’을 넘어 삶의 단면을 슬며시 보여준다.


짓고 지어가는 나날의 이야기들
화폭을 가득 메운 수많은 고차분 작가의 작품은 다시금 ‘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우리네 삶과 똑 닮은 존재인 집, 작품은 ‘집’의 외형이 아닌 ‘집’이라는 완전체를 향한다. 작가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집을 짓는 일과 다름없다. 하나하나 쌓아 올려진 작은 집들은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개인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소소한 순간을 감동으로 이끄는 예술처럼 ‘집’이라는 작은 존재들은 마음을 한껏 안온하게 감싼다. ‘나의 집들이 모두에게 평온한 안식이 되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처럼 집에 깃든 삶의 숱한 이야기들을 만나며 모두의 ‘나’를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문희영 (예술공간 집 대표)

bottom of page